이스라엘의 사태에 대해서..
매냐 여러분 모두들 샬롬(평안) 하신지요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CraZCooL 입니다.
감사하게도 1시간 전인 이곳 시간으로 저녁 9시에(한국은 새벽 4시) 휴전이 체결 되었습니다. 
  - 3시간이 지난 현재 23:40. 안타깝게도 이 시간 동안 가자 지역에서 12발의 로켓포가 이스라엘 지역으로 날아 왔습니다. 가자 지역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라도 평안한 밤을 보내길 바랬는데, 그리고 이 일들로 인해서 휴전이 깨져 가자지역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조용한 밤을 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먼저 저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 하자면
저는 군대를 제대한 후에 아주 우연한 기회로 이스라엘로 오게 되어 현재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히브리 대학교에서 Middle Eastern Studies & Study of Islam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고 HUKSA(Hebrew Universiry Korean Student Association)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학생 입니다.

지난 일요일 밤에 "농구화(話) Weekend : 11월 셋째주는 쉽니다" 라는 글을 통해 이 곳의 불안전한 상황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양해의 글을 올렸고, [Brooklyn]JJ님께서 이곳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요청의 댓글을 적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인 삼한시대 정도까지의 해당하는 오래된 역사의 부분까지 건드려야 할 정도로 방대하고, 어느 한쪽에 쉽게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함께 붙잡고 설명해야 할 요소들이 많으며, 그러기에는 제 지식이 미천하기도 하고 또 편협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인지라 글 재주가 부족한 저에게 있어서는 지난 며칠간이 큰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전제로 말씀 드리고 싶은건
제가 이곳에서 중동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유대인들, 그리고 아랍인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지만,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어디까지나 제 한 사람 개인이 이곳에서 공부하며, 또 살면서 느끼고 배웠던 것들 일 뿐 이라는 것 입니다.


1.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본 역사
AD 73년 예루살렘 동쪽에 있던 마지막 항전지인 마사다 요새가 실바 장군과 로마 군대에게 함락 됨을 끝으로 이 땅에 살던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되고, 성경에서 존재했던 유대 민족의 나라는 이 땅에서 사실상 없어지게 됩니다.
  - 물론 AD 132년의 바르코크바 혁명과 같은 일이 있지만 이 글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진 않으므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들의 상당수는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칼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쪽에 유입되고 또한 유럽과 중동 지역등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죠. 그리고 로마의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예루살렘은 엘리야 카피톨리나(Colonia Aelia Capitolina)라는 새로운 이름의 로마 도시로 재건 되게 되며, 그와 함께 유다 지역이라고 불리던 북쪽 갈릴리 지방을 시리아-팔레스티나(Syria Palaestina)라고 명명하게 됩니다
  - 물론 팔레스타인 이름 자체는 이 시대 전에도 존재를 했었습니다. BC 5세기의 역사가였던 헤로도토스는 그의 역사서에서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시리아 지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기 때문이죠.
  - 팔레스티니안들 중 혹자들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의 정통성을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Philistine)과 연결 지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북서 셈어족에 속하는 이 지역에서 사용하던 아람어, 히브리어, 아랍어의 단어들은 두세개의 뿌리가 되는 알파벳을 가지는데, 팔레스타인과 블레셋은 들리기에는 상당히 가깝지만 뿌리가 되는 단어가 다른 단어이기 때문에 연관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1948년 5월 14일. 초대 수상이었던 밴-구리온 총리의 선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건국이 선포되기 전 지난 2000여년간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 공식적으로는 1차 세계 대전 후 영국의 위임통지 기간을 거치며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됩니다

다시 돌아가서
AD 70년에 디아스포라 된 유대인들의 상당수는 이베리아 반도 쪽으로 유입이 되었고 그들은 그들이 믿는 유대교를 기반으로 해서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 종교를 지켜가며 전세계에 흩어져 2000여년을 살아 왔습니다. 우리가 홀로코스트라고 부르는 유대인 대학살은(정확한 명칭은 '쇼아'입니다) 한번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안티 세미티즘의 영향으로 일어났던 러시아에서의 포그롬(Pogrom)이나 14세기와 15세기에 걸쳐 스페인에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났고, 추방령과 함께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고 쫒겨 났습니다.
  - 이 일로 마라노라고 불리는 겉으로만 기독교로 개종하였던 유대인들도 생기게 됩니다.
  - 15세기 스페인에서의 유대인 추방령의 영향으로 포르투갈 및 주변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추방 되었습니다.
  - 이 당시 추방된 많은 수의 유대인들은 가깝게는 모로코와 지중해를 넘어 예멘,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 등의 많은 중동 지역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들을 스파라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유대 민족이라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편하게 자기 나라라고 부르고 살 땅이 2000여년간 존재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 혹자들은 이스라엘의 상황과 고구려나 발해를 비교하며 그럼 우리도 지금의 한반도 북부쪽 땅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것 아니냐고 말 합니다. 하지만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영토가 사라진게 아니라 줄어들거나 다르게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고려인이나 조선족의 모습으로 그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왔지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생기기 전에는 그들의 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후에도 유럽과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 외에 팔레스타인 지방과 주변 중동지역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의 수도 꽤 되었습니다. 
  - 15세기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유대인 학살로 인해서 스페인을 빠져나와 중동으로 돌아온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고, 20세기초 나찌의 유대인 대학살로 인해 피해 온 유대인들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들이 들어온 것도 사실이지만 11세기 십자군 시대때의 기록들에 이 지역의 유대인들과 관련된 일화들이 많이 등장함을 볼 때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여전히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의 기록을 통해 보면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의 수는 7%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지역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팔레스티니안들이었냐 라고 물어본다면 답변이 매우 어렵다는 것에 있습니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로부터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공인 된 이후 이 지역에서 수많은 전쟁 만큼이나 수많은 기독교 문화가 이 지역에 꽃 피우게 됩니다. 6세기에 이슬람교가 처음으로 등장하고, 11세기 무슬림들과 십자군의 전쟁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곳으로 유입되었고, 이곳의 많은 거주민들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 이스라엘에서 백분율로 가장 기독교인들의 수가 높은 베들레헴과 나사렛의 경우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 사람들이 아랍-기독교인이었고,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국가들 중 가장 기독교인이 많은 요르단의 경우도 10%가 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아랍-기독교인들도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것으로 통계를 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랍-크리스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땅에는 수천년 전부터 7~9만명의(이스라엘 건국 전 통계) 베두인(Bedouin)들이 유목 민족으로 뿌리 내리고 살아오고 있었고 또한 북부 갈릴리와 레바논 산지(이스라엘 지역), 골란고원에는 비슷한 숫자의 드루즈인(Druze)들이 거주해 오고 있습니다.
  - 베두인과 드루즈는 친이스라엘적이며 국방의 의무는 없지만 본인이 원할시에 군대에 입대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이 권한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큰 어드벤티지로 작용 될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을 팔레스티니안들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사마리아 지역에서 여전히 존재하던 500여명의 사마리아인들과 하이파와 아코쪽에 거주하는 바하이교도들 등 다른 소수민족들도 존재해 왔습니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Justin McCarthy에 의하면 19세기 말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던 인구는 60만명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이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땅에 오늘날 자신들을 '팔레스티니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수는 우리가 생각해 왔던 숫자보다 훨씬 적어지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고 건국 이후로 이스라엘은 타 종교를 탄압한 적이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해 주고(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루에 5번씩 시끄럽게 들리는 '아잔'이라고 불리는 무슬림들의 기도 방송이 가장 먼저 금지 되었을 것 입니다) 건국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을 쫒아내지도 않았습니다. 분리 독립안에 따라 이스라엘 지역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시민권을 보장했고, 그에 따라 당시에 시민권을 얻은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은 16만명이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팔레스타인은 지명의 이름이고 이쪽 지역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일뿐 나라의 이름도, 민족의 이름도 아닙니다.
  - 이 지역에는 팔레스티니안 왕이 존재한 적이 없었고, 대통령이나 총리도 없었고, 정부의 형태도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수천년 동안 수많은 열강의 정복지이고 식민지 였을 뿐이죠.

물론 20세기에 들어와 정말 많은 유대인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들어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조상 대대로 수천년간 이 땅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 황당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이 문제가 커진건 정치적이거나 지역적인 문제가 아닌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문제로써의 접근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 벨푸어 선언이나 시오니스트들의 로비 외 건국준비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지나치게 길어지고 또 주제와 큰 연관성이 없는지라 스킵하겠습니다.


이 지도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영국 자치령에서의 팔레스타인 지방과, 1947년 12월에 이스라엘이 독립국가 건립이 인정되면서 UN의 팔레스타인 분리독립안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던 분할안, 그리고 1967년 아랍리그와의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새롭게 차지하게 된 지역과 현재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영향이 미치는 지역 등의 네 개의 지도 입니다.

1948년 5월 14일 두번째 사진의 국경대로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고 단 하루만에 이스라엘의 존재와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트랜스요르단, 이라크 등의 접경 아랍국들의 침공으로 독립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 이스라엘에서 '독립전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적으로 아랍진영에서는 이 일을 '나크바; 대재앙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이 전쟁은 5개월이 지난 10월 15일에서야 끝나게 되고, 이듬해 각각의 나라들과 정전 협정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최초에 할당 받은 56%보다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78%를 장악하게 되고 예루살렘이 지금의 예루살렘의 중앙에 있는 60번 도로를 기준으로 나뉘어 지게 됩니다.
  - 당시 유대인의 인구는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 인구의 32% 수준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많은 팔레스티니안 난민이 생기게 되었고 'refugees wishing to return to their homes and live in peace with their neighbors should be permitted to do so'(고향으로 돌아가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길 원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은 허용되어야 한다)라는 UN 결의안 194호가 통과되었지만 이스라엘이 시행하지 않게 됩니다. 이건 이스라엘 초대 정부가 한 가장 잘못된 행동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이쯤 되니 5시간 넘게 뭘 쓰고 있나 싶네요. 
이쯤에서 이 파트의 결론을 내리자면
제가 보고 공부해 온 역사적인 사실들을 볼 때 어제 Peja St.님의 이스라엘 관련 글에 댓글을 달아주셨던 "여긴 예전에 우리 땅이었고 우리의 성지니까 너희들은 나가라.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곳에 우리가 다시 돌아와 나라를 세웠으니까 아랍인 니네는 여기 근처에 있지 말고 저기 가서 살아라"라고 적어주신 매냐분의 말씀처럼 
  - 댓글을 지목하여 인용해서 죄송합니다. 한국에 있는 많은 분들께서 같은 생각들을 하고 계신 의견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저에게 피력해 주셨기에 예로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단편의 내용들만 보고 이해 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이들도 건국과 동시에 크게 상처 받고, 아픔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안에 유대인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수의 타민족들이 살아가고 있고, 저 만큼이나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려고 노력하는 팔레스티니안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제가 이 곳에서 팔레스티니안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꼭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인데요
  - 통계에 따르면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티니안들 중 40%가 팔레스타인이 독립하게 되어 예루살렘이 반으로 갈라지게 되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팔레스티니안들이 지금의 상황이 썩 맘에 드는건 아니지만,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가 되어 국경을 긋고 이스라엘과 떨어져서 사는 것 보다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훨씬 좋다고 대답을 합니다.
  - 단순노동부터 시작해서 공장의 인부나 시장과 상점들의 상인, 대중교통의 기사들까지 팔레스티니안들은 이스라엘에 많은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입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편하고 높은 수준의 삶 또한 보장 받기 때문이죠.
외부에서 봤을때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과 이 지긋지긋한 불안의 삶을 벗어나 분리되어 자기들끼리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경제적인 현 상황을 볼 때 그 또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반전 시위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목에는 하따-아라파트 라고 불리는 하얀 아랍 스카프를 두르고, 또 플레카드를 들고 목놓아 반전 시위를 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이스라엘의 국기를 흔들며, 플레카드를 들고, 확성기로 소리지르며 안티 하마스를 외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같은 기숙사에서 사는 룸메이트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주장을 외칩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현실 입니다.


2. 팔레스타인의 현실
좀 더 현실적이고 궁금하실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2009년 선출되어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팔레스타인 제 1당인 파타당(Fatah)의 수장 입니다.
팔레스타인은 현재 West Bank라고 불리는 요단강 서안 지역과 가자지구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현 수도인 라말라가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압바스 수반 또한 라말라에 있고, 서안 지역의 경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파타당의 집권 아래 제 2당인 하마스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 하마스는 Harakat Al-Mukawama Al-Islamiya의 약자로 '이슬람 저항 운동'을 의미합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헤브론이나 사마리아 지역에 있는 제닌, 세겜, 나블루스 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하마스의 선전문구를 볼 수 있었고, 강경주의자들인 하마스들의 납치나 테러등의 위협 때문에 유대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위의 지역은 출입이 매우 어려웠었습니다. 하지만 온건파인 파타당의 집권을 이어오면서 서안지구는 정말 크게 변화되고 안정화 되었으며, 지금은 신분증인 여권만 가지고 있다면 차를 타고 어렵지 않게 위의 지역에 출입 할 수 있습니다
-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차량은 사전 허가증을 발급받지 않으면 통과되지 않았었습니다
요르단과 가장 가까운 서안 지역 도시인 예리코(여리고)의 경우도 2년전에 있던 검문소가 완전히 폐지되었고, 상주하던 이스라엘 군인과 장비들 또한 다 철수하였습니다.
이전에 비교해서 최근 몇 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자지구의 상황은 다릅니다.
2006년 6월부터 시작 된 팔레스타인 내전 후 2007년 하마스가 별도의 정부를 구성하게 되고 온건파인 파타당과의 관계는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하마스당은 기본적으로 원리주의자들이며, 만들어진 곳이 가자 지구죠. 그렇기에 서안 지역과 대조적으로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꽉 잡고 있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하마스의 집권 후에 가자지구에 있는 아랍 기독교인들이 큰 탄압을 받고 있고 이러한 일들로 국제적인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죠.
  - 이러한 하마스의 원리주의적인 모습 때문에 주변 아랍 국가들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마스가 오히려 아랍의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하마스는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이란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 파워를 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에서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는 온건파 입장에서는 하마스가 매우 큰 걸림돌 입니다.

며칠전 얘기로 잠시 넘어갔다 오겠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한국의 뉴스에서 접하실 수 없는 내용일 것 같은데요.
2012년 한해 동안 가자지구의 분리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지역으로 날아온 로켓의 수는 지난 한주간의 사태를 제외하고 라도 10,000 발이 넘습니다. 가자지구 주변에 있는 공동 농장인 키부츠들과 인접도시는 이번 사태와 무관하게 타켓이 되어 온 거죠.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 국경에서 근무하던 4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하마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한명은 코마 상태에 빠져있고, 다른 한명은 중상, 나머지 두명은 경상을 입었죠.
이 후 가자지구 쪽에서의 로켓 공격이 계속 되었고,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역에 200개의 타겟을 설정하여 폭격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흘째 폭격으로 하마스군의 수장인 아흐마드 알-자바리가 사망하게 됩니다.
  - 아흐마드 알-자바리는 2006년 레바논 2차 전쟁이 일어나게 했던 주범으로, 길라드 샬리트라는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했으며 지난해 이집트를 통해서 1,027명의 팔레스타인 재소자와 1,027:1로 포로 교환을 하여 풀어 줬습니다.

재미있는건 자바리가 죽임을 당하자 압바스 수반이 아랍 연합(Arab League)에 긴급 회의를 요청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인정 안하고 없어지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아랍 연합 쪽에서 이 일을 꼬투리로 잡고 이스라엘을 압박하거나 공격 할 수 있는 찬스인지라 아랍 연합 측에서 먼저 압바스를 불러내야 하는데, 상황이 전혀 반대로 전개가 된거죠.
그리고 결과는.. 아랍 연합에 속해 있는 몇몇 주변 국가들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항의하는 성명만 몇개 나올 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압바스가 오히려 아랍 연합을 불러모아 눈 감아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되거나 장기적으로 진행된다면 하마스는 크게 날개가 꺾여 힘을 잃을 것이기 때문에 가자 지구쪽에 항상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압바스 수반의 입장에서는 손 안대고 코를 푸는 겪이 되는거죠.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하마스가 힘을 잃고 온건파인 파타가 강해져야 나라를 안정 시킬 수도 있고, 또한 복합적인 요소로 대선에도 여당의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큰 플러스 요인이 되니까요.


3. 분리 장벽에 대하여
한국의 많은 분들은 이스라엘이 독일과 폴란드에서 자기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게토(Getto)를 만들어 팔레스티니안들을 가둬놓는다고 얘기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도 어느정도는 동감을 하기도 하고, 또 지나치게 프로-팔레스타인적인 생각이라는 입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위 쪽에 있는 네 개의 지도 중 마지막 지도를 보시면 굵은 선으로 분리장벽이 표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 하실 수 있습니다.
  - 이 분리장벽은 높이 8m의 콘크리트 벽 또는 철조망으로 되어 있고, 콘크리트 벽의 경우 블럭식으로 일자로 세워서 장벽을 만듭니다.
이 장벽으로 인해서 농장의 일부를 잃은 팔레스티니안들도 있고, 통제가 심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 한국어로도 자막이 있는 '레몬트리'라는 이스라엘의 영화를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공감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장벽이 왜 생기게 되었냐에 대해 근본적인 이해함이 생기면 시각이 조금 달라 질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 이 장벽은 2002년에 처음으로 건설을 시작하였고 총 길이는 700km에 이릅니다.
  - 국제 사법 재판소는 2004년에 '이스라엘에게 장벽의 건설은 부당하며, 또한 자기 방어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권고 하였습니다.
이 장벽이 세워지게 된 것은 2000년부터 벌어진 2차 인티파다에서부터 기인 합니다.
  - 인티파다(Intifadah)는 항쟁, 투쟁, 각성 등의 의미로 '팔레스타인 봉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1차는 1987년에, 2차는 2000년 9월 시작 되어 2000여명이 넘게 사망하고 2005년에서야 끝이 납니다.
2000년 9월 샤론 총리는 1,000명이나 되는 보안요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성 안에 있는 이슬람의 삼대 성지 중 하나인 바위돔(Dome of the Rock)과 알-악사 사원을 방문 합니다. 이 일에 무슬림 팔레스티니안들이 분노를 사게 되어 봉기하게 되고, 누가 더 잘못했다고 할 것 없이 이스라엘의 탄압과 팔레스티니안들의 자살 폭탄 테러와 항쟁은 몇년간 끊이질 않습니다.
  - 3년간 벌어진 70여건의 자살 폭탄 테러로 인해 2,300여명의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테러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분리 장벽을 세우게 됩니다.
  - 분리 장벽은 특정 도시나 마을을 감싸지 않으며 위의 사진처럼 국경의 역할을 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4. 이번 사태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연이은 폭격으로 19일까지 팔레스타인쪽 사망자 130명 중에 60여명이 민간인이고 그 중에 어린이들이 반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5셋트의 아이언 돔이라는 매우 신뢰도가 높은 방어 무기를 배치하여 효과적으로 도시로 날아오는 공격들을 방어하고 있고, 방공 경보 시스템이 되어 있으며, Red Color라고 하는 이 사이렌이 울리게 되면 각 집과 건물, 공공기관마다 설치되어 있는 방공호로 사람들이 일제히 숨어 피해를 최소화 합니다.
오폭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인정하지만 그걸로 이스라엘을 쉴드 쳐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자 지구 안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건 절대적으로 이스라엘이 잘못하고 있고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마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쌍해서 안 죽이고 있는게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신문 기사에서 이스라엘의 스파이 혐의로 죽임을 당해 오토바이에 시신을 끌고 다니는 사진이(한국쪽에도 보도가 되었습니다) 보도 되었습니다. 하마스에게도 좋은 무기와 측각 장비, 군수품들이 있다면 이스라엘의 피해는 훨씬 커졌을 것 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팔레스타인 희생자들 만큼이나 더 많은 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거죠.
하루에도 수백발의 로켓이 날아오는데(제 스마트폰에서 두군데 뉴스앱으로부터 알림을 받게 설정해 두었는데, 하루에도 로켓 관련 기사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분명히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지상군을 투입시키는건 전면전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중에서 확인 된 포인트에 폭격을 하는거죠.
민간인 사망자가 생기는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이 방법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어떻게 자신들을 지킬 수 있을까요?

한국 기사에도 난 것처럼 지난 18일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있는 미디어 센터를 공격 했습니다.
외신 기자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고, 상주하고 있는 러시아 투데이의 방송 장비가 파괴되고, 또 현지 언론인들이 중상을 입는 상황으로 언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한국에는 보도가 안 된걸로 알고 있는데, 이스라엘 쪽 기사에서는 그 언론사 건물에서 하마스 병사 4명이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저도 이런 상반 된 기사들을 볼 때마다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지 혼란이 옵니다.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계산 할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상호간의 보상 제도가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 작년 10월에 동예루살렘의 실완이라는(성경의 실로암) 팔레스타인 구역에서 제 차가 테러(?)를 당했습니다. 큰 돌에 맞아 뒷 유리창이 박살났고, 저는 두려움에 범인을 잡지도 못하고 차를 몰아 그곳을 빠져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정부에 보상금 청구를 해서 2700세켈(한화로 81만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았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죽이게 되면 100만세켈(한화로 3억원)을 보상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실수로라도 죽이고 싶을까요?


5. 언론에 대해서
지난 번 댓글에도 언급 했던 내용인데 언론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끝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현재 거주중인 한국인은 500여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한인들이 살지 않습니다. 대부분 서로를 알고 있고, 저 같은 경우 이스라엘에서 거주한 기간이 꽤 되서 많은 분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정치학 MA를 다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지인이 있는데 한국쪽 언론에 컬럼을 쓰면서 많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직접 들어 알고 있습니다. 중립적 입장에서 컬럼을 써서 한국으로 보내면, 편집되어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반이스라엘적인 내용으로 바뀌어 신문에 실린다는 겁니다.
이 일 때문에 기사를 내리니, 고소미를 먹니 뭐 이런 얘기를 옆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모든 언론사가 그런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아서 인기가 없는, 돈이 되지 않는 기사를 엉터리로 바꿔서 내보내는 이런 언론사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BBC는 지난 시리아 사태때 나왔던 사진들을 내용만 바꿔서 가자지구라고 뻥친다고 이스라엘로 부터 뚜드려 맞고 있네요.
얘네는 이란이랑도 관계가 개판이고, 이스라엘이랑도 이러고.. 이해를 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래의 링크는 이스라엘에서 거주하고 계신 제가 신뢰하는 중동 전문가 분의 기사들 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제대로 된 기사를 원하신다면 이 분의 기사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인이고, 판단은 본인이 하는 것이 맞을 것 입니다.

쓰고 나서 보니 별로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아서 길기만 한 글에 눈만 아프실까봐 죄송하네요.

벌써 새벽 6시 30분이군요.
저는 오늘 가지지구 옆에 있는 몇몇 도시로 취재를 갑니다. 그쪽 지역 몇몇 사람들과 인터뷰 일정을 잡아 놨습니다. 자정부터 24시간 휴전이라는데, 제발 안전하게 내려갔다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CraZCooL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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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3.03.18 08:07

    비밀댓글입니다